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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들이 겸 오랜만에 등산을 했습니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일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구나!' 하고 아는 체 한번 해주고 나서 일상에 빠져  찬란하게 세상을 수놓았던 꽃들을 제대로 봐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오늘 어느새 녹음이 푸르러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산에 이름 모를 나무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여유를 찾습니다. 그런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며 보이는 나무와 풀들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참 주위에 무관심하게 이기적으로 산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개인적으로 산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이들이 사람이었다면 분명 저에게 그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이런 저에게 어렴풋 떠오른 책의 내용, 안도현 시인의 "아침엽서" 입니다. 

책을 펴서 책장을 넘기니 어렵지 않게 그 대목을 찾았습니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고 해서 

나무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본적이 없는 고장 사람들, 

그들이 산의 나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 

 

스치고 지나가면 모르는 것이 많다. 

천천히 가야 꽃잎이 몇 개인지 알 수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꽃들은 바람을 좋아하지만

모든 바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꽃들에게도 취향이 있다.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

눈여겨보지 않았던 들꽃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라. 

들꽃들이 저마다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이름표를 보라. 

이름을 알고 나면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름을 알고 나면 누구도 예쁜 꽃에다 침을 뱉지 않는다. 

누구도 연약한 꽃대를 꺾지 않는다.

애기똥풀도 며느리밥풀꽃도 

모두 사람처럼 여겨져 마침내 한 식구가 된다. 

 

지나가는 길에 

오래 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더불어 그 나무의 마음을 향해서도 경배할 일이다.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은 충분히 경배받을 자격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이치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뜻과 같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얕보는 인간들은 

그 중요한 사실을 영원히 모르게 된다. 

게다가 자연은 속일 수 없다는 것 역시 

영원히 모르게 된다.

 


요즘 일어나는 수많은 자연재해들을 보면 모두 그동안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잊고 자연에게 함부로 한 대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아 품어줄 듯 참 평온하고 한가하고 시원한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는 자연입니다.  그러다가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하면 그때는 사람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무서운 재앙으로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죠. 근데 우리는 가끔 어리석게도 그 원망을 다시 자연에게 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자연의 일부임을 안다는 것....

자연앞에 겸허함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지 않을까요?

오늘 산에서 만난 꽃나무의 이름을 찾아봅니다. 

그 산은 이제 더이상 저에게 낯선  산이, 오르기 힘든 산이 아닙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그 나무가 사는 산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더 행복한 하루이길 염원합니다.